자기소개하는 네모네모의 이력서든 어디든간에, '취미'란은 꼭 나온다.
여기서 나는 항상 고민하게 되는데 (게다가 매번 볼때마다 그런다!)
언젠가부터 나만의 취미생활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의 '취미' 후보군
1. 피아노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가 말았기에, 피아노는 지금까지 나의 (여러가지중의) 로망이기에,
곧잘 취미란에 피아노를 썼다.
허나 재즈피아노 레슨을 등록해놓고도 연습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바로 포기.
게다가 나는 나의 '피아노 소리'의 딱딱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성격을 반영하는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패-쓰.
2. 독서
초등학교때까진 분명히 책읽기를 사랑하는 소녀였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부터 책을 뜨문뜨문 읽다가 최근 몇년간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기에 '독서'를 취미란에 써볼까, 했는데
이런 너무나 노말하다. 재미없다.
그래서 패-쓰.
3. 음악감상, 영화보기, 미술감상, 공연보기
음악감상이라던가 영화보기는 현대를 사는 누구나의 취미가 될 수 있고,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엠피쓰리 하나는 손에 들고, 이젠 지하철 안에서조차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이기에.
그리고 영화, 전시회, 공연같은 것은 '초'소비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어쩔 수 없이 돈주고 사는 취미생활이리라,고 생각한다. 창조된 것들로부터 즐거움을 얻는 우아한 소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회는 ('취미'란의) 급 물망에 떠올랐다가 12000원으로 오르면서 버렸고,
공연도 뮤지컬에 연예인이 마구 튀어나오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이 되버리면서 버렸다.
패-쓰.
4. 걷기
가장 나스러운 취미가 아닌가 싶다. 걷고걷고또걷고. 혼자걷고 둘이걷고 셋부턴 목적지로 향하는 걷기만 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지면 외출의 목적이 '걷기'가 되어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주로 방황하는 곳은 광화문, 인사동, 가회동, 삼청동 일대. 그리고 잠시 어딘가 해외에 체류할 경우에도 나의 걷기 병은 없어지질 않아 골목길이면 무조건 가보기, 언덕위엔 뭐가 있는지 꼭 확인하기. 등의 증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취미란에 '걷기'라고 쓰기엔 너무 없어보이지 않는가. 아무리 내가 보통 성인남성의 걷기 속도보다 쬐끔 더 빠른 속력을 얻게되었더라도.
그래서 패-쓰했다.
5. 바느질
가장 최근에 발생한 취미욕구. 사실 바느질에 대한 욕구는 작년에 라오스 루앙프라방 나잇마켓에서 그 엄청난 '자수'와 '바느질' 소품들을 보고 한눈에 뿅갔을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노동자로 살아가기엔 먼길을 와버린 내가 그나마 작고 작고 또 작은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란 바느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옛날 어머니들이 삯바느질로 아이들 공부를 시키고, 호롱등불 아래 자수를 놓던 그 시절과는 전혀다른 의미의 손노동이겠지만은.
말로만 바느질바느질을 외치다가, 언젠가는 바느질을 하겠다며 쪼각 천까지 사놓고는,
진짜로 바늘을 잡은건 이번 여름. 월하리에서다.
차강작가님이 월화상회 할머니 이야기를 퀼트로 액자로 만드는 작업에 아주 작게나마 참여.
제목 '월하상회' 수놓기.
'기계수'라는 소리를 들으며 즐겁게 작업했더랬다.
그리고는 벼레별씨 에코워크숍이었던가,
집에서 입지 않는 옷가지들로 인형만들기 워크숍 참여.
벼레별씨로 향하는 중에 갑자기 떠오른 (아마 그때즈음에 집 근처에서 정말 오랜만의 달팽이를 보고 감격했을게다.) 달팽이를 만들기 시작.
몸통을 무려 호피무늬 천으로 만들었더니 화려&징글한 달팽이가 완성되었다. 사람 손 없이는 절대 몸을 세울 수 없는 호피달팽.
실물보다 사진이 더 징글거리는 것 같다.
BOOK SOCIETY에 갔다가 독립출판과 자기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감을 받아 시작한 나혼자의 자수놓기.
삐툴어지지도 않고 어찌나 촘촘히 놓으셨는지.
까먹고 있었던 나의 결벽증적 모습을 발견하고 조금 놀랐는데.
아이가 너무 외로워 보이고 마무리로 얼굴 표정을 어떻게 수습을 잘 못해서 그냥 천 채로 나뒹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완성한 명함지갑.
누군가 그랬다. 돈과 카드가 함께 접혀있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니깐, '원래 명함은 따로 들고다니는거 아냐?'라고.
귀얇은 나는 하나 장만해야겠다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만들어야겠다고 아주몇달전에 결심.
그러고는 어제야 완성했다.
예전에 부암동 어딘가 까페에서 샀던 천과, 월하리에서 가져온 광목천과,
집에서 몇년동안 잠들어있던 십자수 실을 이용하여
삐툴삐툴 완성.
이러고보니 내 취미는 바느질이라고 해도 될까.싶다. 밤에 사방이 조용할 때, 씨디나 한장 재생시켜놓고 한땀한땀 뜨다보면 시간이 잘간다. 이미 창조된 것(그것도 아주 예쁘고 매력적이고 탐나도록)을 구매함으로 오는 만족감도 있겠지만은, 어찌됐든 스스로 창조하면서 얻는 만족감은 조금더. 큰것같다. 그래서 아마 나는 바느질을 취미란에 자랑스럽게 적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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